Crew life,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IPH(말레이시아, 이포) 레이오버(ft. 첫 AOG)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항공사지만 나의 첫 항공사에서 일하던때 경험한 첫 AOG가 생각난다.

 

비행을 한지 1년이 될까말까했던 아직 Junior시절, 이 날도 어김없이 열심히 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패턴 중 하나인 포섹터......(하루에 편도로 따지면 총 4번을 날아다녀야하는 비행)

 

잘 기억은 나진 않지만 이날 아마 SIN-BKK-SIN-IPH-SIN패턴 비행을 했던 것 같다. 비록 섹터마다 비행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지만, 모든 섹터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비스의 모든 프로시져가 이루어져야하고 마감도 두번을 해야해서 업무가 많다. 또한 하루에 보딩만 4번하는데 승객들의 짐이 특히 많고 3~4번째 섹터인 말레이시아 이포는 유독 노약자 승객이 많아서 도움을 드려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꽤 피곤한 비행이다.

 

드디어 이포에 랜딩하고 이제 마지막 승객들 태우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캡틴의 보딩사인이 떨어지지 않는다.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기다렸다. 기다리는데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결국 캡틴왈 APU not working이란다. 헉......

 

 

 

결국 마지막 승객 보딩을 계속 지연시키고 이포 엔지니어랑 계속 체크하며 재시동을 걸어봐도 안된다. 그렇게 2시간정도가 지났을까? 들은 이야기는 어떤 부품을 교체해야하는데 문제는 이포에는 그 부품이 없고 KL에서 가져와야하는데 그게 빨라도 내일이 될거란다.

바로 회사에 연락해서 들은 답은 "지금 Rescue flight을 보낼테니 마지막 승객들 거기로 보내고 너희(승무원들)도 승객으로 타고와라. 단, 1명의 Cabin crew와 2명의 Flight deck crew들은 남아서 내일 그 비행기 고쳐서 operate back해라." 였다.

 

 

그당시 나는 크루들 중 제일 junior의 외국인 신분, 나머지는 다들 가족이 있고 돌아가고 싶어했던지라 결국 내가 남기로 당첨이 되버렸다. 당황스러웠다. 가방에 챙겨온게 있긴해도 레이오버를 위한 준비를 매일 완벽하게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기때문에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먼저 가는 크루들이 십시일반으로 쓸만한 물품 이거저거 챙겨주는거 받아서 그렇게 이포에 남게되었다.

 

팀원들 먼저 떠나보내기 전 한장 찰칵! 피곤해도 스마일 :)

그렇게 강제 레이오버가 시작되었다. 세상에 옆동네같은 이포에서 레이오버라니...... 뭔가 얼떨떨......

이런상황은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책임 지상지원분이 너무나 잘 arrange해주셔서 호텔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이포 맛있는거 많다고 들어서 한번쯤 와봐야지하고 생각만하다가 이렇게 인연이 되버렸다. 숙소는 쾌적하고 조용했다. 바로 옆에 큰 몰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입고 나갈만한 옷이 변변치 않고, 하루종일 너무 시달려서(APU고장나서 기내 에어컨도 고장남. 사우나같았던 기내에서 한참을 대기+손님들의 컴플레인 등등) 그냥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이래서 승무원은 항상 왠만한 짐은 다 챙겨들고 다녀야 하는거였다......)

 

 

혼자 쓰는 방인데 왜 트윈룸을 주셨을까? 암튼 뭐 감사히 받아야지요......

 

전반적으로 우드톤으로 꾸며진 호텔, 자연친화적인 느낌도 들고~

 

 

 

그리고 제공받았던 웰컴드링크 쿠폰으로 룸으로 들고 왔던 (무알콜) Cucumber Mojito! 색감이 너무 예뻐서 냉큼 한 컷!

 

 

욕실을 보니 괜찮은 욕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피곤에 찌든 몸 좀 녹여야했다. 간만에 거품 풍부하게 풀고 아까 들고온 웰컴드링크 옆에 두고 시작된 나의 off mode.

 

 

그렇게 실신하듯이 자고 일어나니 벌써 아침이 되버렸다.

정말 몇시간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그새 다음날이라니... 어제 하루가 길고 고되긴 했나 보다.

 

오늘의 비행은 '손님0명'인 스페셜한 비행이지만 그래도 나는 승무원! 그루밍 척척 완료하고 시간맞춰 동료들을 보러 내려간다.

돌아갈 준비 완료!

다행히 비행기는 밤사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나도 flight deck크루들도 갈 준비 완료!

승객이 아무도 없고, Cabin crew는 1명인 신기한 상황이라 캡틴이 칵핏으로 초대해주었다! SNY때도 못가본 칵핏을 이렇게 또 경험해보겠구나! 덕분에 모든 과정을 뒤에서 지켜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같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입장인데 어쩜 캐빈에서 볼때랑 칵핏에서 보는 하늘은 이렇게 다르던지... 아직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다시한번 칵핏에 초대해준 캡틴에게 감사를 :)

 

그렇게 베이스로 무사히 돌아왔다. 새로운 그리고 첫 경험들을 간직한채로...

 

매일하는 비행이고 2년차가 되는 시점이라 슬슬 비행에 대해 무뎌져가는 시점이었다. 이날의 경험은 순간 누가 나에게 물을 확 끼얹은 것처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더 많은 것을 배웠고, 어깨도 더 무거워지는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평소에 챙길짐이 많아도 불평하지 말자! 무슨일이 어디서 터질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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